이 세상엔 한번 시작하면 결코 멈출 수 없는 일이 꽤 있는데, 일기도 그런 일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언제부턴가 나는 일기라는 걸 쓰기 시작했다. 어느날 우연히 손을 댄게 어느덧 십 년, 이십 년을 훌쩍 넘었다. 괴로울 때나 기쁠 때나 늘 나와 함께했던 일기는 나의 오랜 친구이자 연인이다. 그가 결코 날 실망시키거나 배반하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안다.
내가 쓴 최초의 일기는 불태워져 지금 남아 있지 않다. 중학교 1학년 혹은 2학년 겨울 무렵이었다. 한방을 쓰던 동생이 어느날 내 일기를 몰래 훔쳐보고 엄마에게 고자질을 한 게 화근이었다. 그때 내가 쓴 일기의 어떤 대목이 문제를 일으켰는지, 정확히 어떤 내용이었는지......몰래 짝사랑한 수학선생님 이야기였던가? 아님 학교공부를 땡땡이치고 소설책을 보러 시립도서관을 다닌 게 들통이 나서였던가? 아무튼 당시로서는 무척 중대한 일이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기억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일로 내가 심각한 내상을 입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엄마에게 꾸지람을 들었다는 사실보다 누군가 '나'를 읽었다는 것, 동생과 엄마에게 내 비밀을 들켰다는 데 더 경악하고 분노했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 일찍 학교로 간 나는 너무 이른 시각이라 아무도 없는 텅 빈 교실에서 문제의 공책을 북북 찢어 난로구덩이에 넣고 태우는 의식을 거행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며 '이제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던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자살을 꿈꾸었다. 그 무렵 미군부대에 다니던 삼촌이 주고 간 정체불명의 하얀 약병 하나가 집안에 굴러다니고 있었는데, '많이 먹으면 위험하다'고 겉봉에 씌어 있는 걸 보고 순진한 머리를 굴린 것이다. 엄마 몰래 가방에 챙겨넣은 병을 꺼내 그 속에 든 내용물을 모두 삼킬 작정으로 손바닥에 알약을 쏟아 입에 넣었다. 하나 둘...... 열 알...... 스무 알쯤 먹자 덜컥 겁이 났다.(아마 아스피린 종류였던 것 같다).
물론 난 죽지 않았지만, 그날 오후께쯤 배가 아파 학교를 조퇴하고 집으로 와야 했다.
그후 한동안 난 일기 따위는 쓰지 않았다. 대신에 당시 유행하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삽화가 예쁘게 그려진 작은 공책에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의 한 구절과 명시들을 베껴 적었고, 그 사이 틈틈이 누가 봐도 모르게 영어로 일기를 썼다. 그렇게 하면 아무에게도 들킬 염려가 없다는 게 당시 내 서투른 계산이었다.
분홍, 파랑, 녹색 등 색색가지 종이들로 화사하게 제본된 그 시화집 겸 독후감 공책의 첫장에 또박또박한 글씨체로 나는 이렇게 썼다. "진실. 진실을 가장 사랑합니다." 그 다음 페이지엔 "까라마조프 형제들"에 나오는 조시마 장로의 형 마켈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인생은 낙원이에요. 우리들은 모두 낙원에 있으면서 그것을 알려고 하지 않아요. 만약 알려고만 한다면 내일이라도 우리들은 지상의 낙원을 가질 수 있을 거예요."
정말 그런가? 진실을 사랑하는 게 내 운명이었던가? 정말 인생이 낙원인가? 가끔씩 생각나면 철지난 일기장들을 들춰보는 게 내 취미라면 취미이다. 특히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때면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던 옛날이 그리워 일기장을 찾는다. 과거의 나를 통해 현재의 나를 보는 것. 그래서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월이 흘러 생이 내게 준, 어찌 보면 사치롭기까지 한 최초의 상처가 또 다른 절절한 아픔과 고통들에 의해 희미해지고 잊혀질 무렵, 사춘기가 절정에 달했던 고교 2학년 때에 나는 다시 일기 쓰는 일에 몰두했었다. 당시 내가 심취했던 루이제 린저의 소설 주인공인 에리나Erina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씌어진 뜨거운 고백들...... 베토벤과 전혜린, 그리고 장 크리스토프에 빠져 속물이 정확히 뭔지도 모르면서 속물을 가장 경멸하던 그 시절 나의 죄우명은 "젊은이여, 항상 어려운 길을 택하라!"였다.
운명을 휘어잡은 초극의 생애, 베토벤을 숭배하고 베토벤을 닮고자 했던 갈망으로 부풀어올랐던 삐뚤체의 기록들은 그러나, 1979년 4월 7일로 막을 내린다. 어느새 고3이 된 나는 앞으로 내 인생에서 일년을 빼자고 다짐하며 일기장을 덮었다.
1980년에서 1985년까지 어둡고 침침했던 시대를 고민하며 살았던 대학시절에 난 일기를 쓰지 않았다. 아니, 쓰지 못했다. 현실의 무게에 눌려 나날의 현실을 기록할 힘과 여유를 빼앗겨서였다.
내가 다시 본격적으로 일기에 매달린 것은 1986년 내 나이 스물 다섯되던 해에 한 선배로부터 일기장을 선물받고부터였다. 그건 일찍이 내가 가져보지 못한 근사한 선물이었다. 하드커버에 고리가 달려 자물쇠로 잠글 수도 있는, 꿈에 그리던 일기장을 처음 만져보뎐 날 나는 얼마나 흥분했던가.
내 시의 최초의 독자였던 그. 전화로 내가 방금 쓴 따끈따끈한 시들을 읽어주면 재미있다고 깔깔 웃던. 혹은 너무 슬프다며 한숨짓던 그는 첫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산파역을 했다.
일기는 내 문학의 시작이자 끝이다.
내가 쓴 최초의 시들은 일기장에 발표되었고, 또 내 인생이 종말을 고하는 그날 내가 세상에 남길 마지막 작품은 최후의 그날 아침, 혹은 그 전날 밤에 내가 썼던 일기일테니까.
작년 가을부터 부쩍 인생을 정리해야 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아마 아홉수를 겪는 모양인데 건강에 자신이 없어지고부터 그 증세가 심해졌다. 스물에서 서른에 이르는 가팔랐던 세월에 비하면 훨씬 여유가 있지만, 이 고개를 넘으면 이제 꼼짝없이 중년이란 생각에 밥을 먹다가도 길을 가다가도 문득문득 아찔해진다.
몇 달 전부터 난 그토록 즐기던 술을 완전히(?) 끊었고, 올해 초부터 담배도 끊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깨끗해진 몸과 마음으로 인생을 정리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요즈음 난 옛 일기장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며칠 못 가 손을 들고 말았다. 총 십여 권에 이르는 일기들을 컴퓨터로 다 입력시키려면-내 느린 타자솜씨론-일 년은 족히 걸릴 것이니 이러다간 내 인생을 정리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가떨어져 '정리' 될 판이다.
게다가 원본을 그대로 살리되 중복, 부연되는 내용을 빼고 편집하는 것도 대단한 인내심이 요구되는 일이다. 컴퓨터 자판을 하염없이 두드리던 어느날, 나도 모르게 내가 일기를 각색해 '소설'을 쓰고 있다는 걸 발견했는데......
차라리 이걸 주물러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볼까? 요즈음 나의 고민거리이다.
1999년 레이디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