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생각한다

길바닥에 뿌려진 그 전날 카니발의 색종이를 바라보던 봄의 슬픔. 뮌헨에서라면 이런 날 나는 공동 묘지에 갈 것이다.
봄은 나에게는 취기의 계절, 광기의 계절로 느껴진다. 자연과 인간에서부터 어떤 사랑을 취하게 하는 강렬하고 새로운 생기가 발산하여 가만히 있어도 마음이 뜨겁게 고조된다. 사육제의 광기와 회색 수요일의 허망과 부활 주일의 흰 나르시스꽃에 쌓인 길과 이런 나의 젊은 날의 추억들과 봄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뿐 아니라 내가 나의 첫번 출산의 이적을 겪은 것도 3월이었다.
겨울생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사실은 겨울이다.
언제나 가을만 되면 '내 계절이여 빨리 오거라!' 하고 기다리며 내 심신이 모두 생기에 넘치게 된다. 마치 목마른 생선이 물을 만난 것 같다고나 할까?
그러나 내 계절은 지나고 말았다. 그와 함께 해마다 내 계절이면 나에게 찾아와 나에게 생의 애착을 가르쳐 주던 로맨틱도 동경도 가 버리고 말았다.
비가 오던 날 뮌헨의 회색 하늘 빛 포도에 망연히 서서 길바닥에 뿌려진 그 전날의 카니발 색종이 조각의 나머지가 눈처럼 쌓여 있는 것을 바라보던 슬픔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부터 나는 봄을 슬퍼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그 허전함을 잊기 위해 도취와 광기를 구하게 된 것이 아닐까? 미친 듯이 그로크를 마시고, 회전 당구를 끝없이 회전시키고, 흰 수선화를 잔뜩 사들고 공원의 호수에 가서 백조에게 뿌려 주었던 것도 모두 뮌헨의 봄에 있었던 일들이다.
혼돈과 깨어남, 감미한 비애와 도취 이것이 나의 봄이었다.
지금 맞는 삼십대의 봄은 그렇게까지 강한 긴장감으로 나를 가득 채워주지 않는다. 그러나 관능을 흔드는 먼지 섞인 봄바람과 해이하게 풀린 연한 하늘을 보면 먼 메아리처럼 취기의 여음이 가슴 속을 뒤흔든다. 그래서 막연히 거리를 곧고 있는 자기를 문득 발견할 때가 있다.
뮌헨에서라면 이럴 때 나는 공동 묘지에 갈 것이다. 가서 조각과 꽃으로 에워싸인 조용한 어둠 속을 돌아다닐 것이다. 이름을 하나씩 읽고 살았던 기간을 세어 보고 풀밭에 주저앉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갈 곳이 정말 없다. 공원, 독일적인 의미의 묘지도 미술관도 아니면 인적 없는 광대한 수풀도 이 도시에는 없다.
그래서 나는 나의 먼 메아리 같은 광기를 가슴 속 깊이 꽉꽉 닫아 놓고 어떤 상실감에 앓고 있다. 내 봄은 언제나 괴롭다. 올해는 더구나 그렇다. 찬란했던 겨울과 결별한 후 나에게는 지칠듯한 회한과 약간의 취기의 뒷맛이 남아 있다.
그것을 맛보면서 나는 아무 기대도 없이 끔찍한 여름을 향하게 된다.



가을이면 앓는 병

이 결별과 출발의 집념은 매년 가을이면 나에게 다가오는 병마이다.   
 

가을처럼 여행에 알맞는 계절이 또 있을까? 모든 정을 다 결별하고 홀가분하게 여행을 하고 싶어지는 계절이 가을이다. 엷어진 일광과 냉랭한 공기 속을 어디라고 정한 곳 없이 떠나 버리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난다. 매일 매일의 궤도에 오른 생활이 뽀얀 오후의 먼지 속에서 유난히 염증나게 느껴진다. 여름의 생기가 다 빼앗아가 버린 나머지의 잔해처럼 몸도 마음도 피로에 사로잡히게 되고 생 전반에 대한 지긋지긋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럴 때 어디로 떠났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출발을 생각하며 자기의 정해진 궤도 밖으로 튀어 나갈 생각에 몸부림친다. 이 결별과 출발의 집념은 매년 가을이면 나에게 다가오는 병마(새로운 빛과 음향 속으로의)로서 그 생각 끝에 결국 '죽음'이라는 개념에 고착해 버리고 마는 까닭에 몸부림치는 것이다.
긴 여행 - 돌아오지 않는 여행, 깨어남 없는 깊은 잠, 이러한 것들이 가을이면 매년 나의 고정 관념으로 되어 버린다. 여름의 모든 색채와 열기가 가고 난 뒤의 냉기와 검은 빛과 조락은 나에게는 너무나 죽음을 갈망하는 자태로 유혹을 보내온다. 그래서 매년 가을이면 몇 주일이나 학교도 못 나오게 되고 앓아 눕게 된다. 의사는 신경의 병이라지만 나 자신은 내가 '존재에 앓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을 만큼 절실하고 긴박하게 생(生)과 사(死)만을 집요하게 생각하고 불면 불식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생과 사에 대한 생각이라기보다는 사에 대한 생각이 나를 전적으로 사로잡아 버린다.
가을은 토카이의 시 속에서처럼 저녁 노을에 박쥐가 퍼덕거리는 숲을 지나서 오솔길을 한없이 걸어가다가 길목에 있는 선술집에 들어가 '어린 포도주와 파란 호두'를 먹고 죽음 속으로 비틀 거리며 들어가 버리기에 꼭 적합한 계절인 것만 같다.
괴로와하고 모든 것에서 공허와 권태와 몰락만을 발견하게 되고 죽음에의 항로에의 유혹을 생생하고 강렬하게 받고 생의 의지가 거의 마비되어 버리는 몇 주일을 꼭 겪어야하는 것이 나의 가을이다. 그래서 나는 가을을 무서워한다. 그리고 싫어한다. 이렇게 지긋지긋하게 어둡고 무겁고 괴로운 몇 주일을 올해도 얼마 전에 보내고 났다.
매일 커튼을 검게 방 둘레에 치고 어스름한 박명(薄明) 속에 누워 있었다. 아무 소리도 말 소리도 내지 못하게 집안 식구에게 이르고 커튼을 통해 들어오는 광선이 조금이라도 짙은 날에는 두꺼운 검은 색안경을 끼고 있었다. 열흘쯤 이렇게 앓고 나니 다시 일어나서 사물을 예전과 같은 각도에서 볼 힘이 어디선지 솟아낫고 가을은 깊어져 있었다.



긴 방황

나는 요즘 회복기의 환자가 햇볕 속에 앉아 느끼는 꿈꾸는 듯이 나른한 행복과 권태에 산다


금빛 햇볕이 가득 쪼이는 건조하고 맑디맑은 한국의 가을 속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가끔 나에게는 미칠듯한 환희의 느낌을 준다.
산다는 일. 호흡하고 말하고 미소할 수 있다는 일. 귀중한 일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전에는 욕망도 많았다. 중학교 때, 죽어도 평범한 인간이 되어선 안된다는 생각이 지금껏 어느 마녀의 저주같이 따라다니고 있다. 나를 그렇게 형성하려고 하고 있다.
어린 시절의 소망은 얼마나 오만과 무지를 나타내고 있는가? 너무나 순수하게도 지금 그때를 회상하면 악의 없는 그러나 연민 섞인 미소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바보와 같은 어린 시절. 그리고 청춘시절 - 지금 나는 '서야 한다'는 - 자기 자신을 사회 내에서 존재케 해야 한다는 나이에 들어섰다.
30세! 무서운 나이! 끔찍한 시간의 축적이다. 어리석음과 광년의 금자탑이다.
여자로서 겪을 수 있는 한의 기쁨과 절정과 괴로움의 극치를 나는 모두 맛보았다. 일순도 김 나간 사이다같이 무미한 순간이라곤 없었다. 팽팽했고 터질 듯 꽉 차 있었다. 괴로움에. 기쁨에 그리고 언제나 나는 꿈꾸고 있었다.
지금도 앞으로도! 꿈 없이는 살 수 없다. 눈에 보이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현실만이 전부라면 인간은 살아갈 가치가 없는 무엇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상과 꿈이 우리를 만든다. 우리에게도 뜻밖의 형태로. 동화같이. 분홍 솜사탕 맛같이 느껴지는 유년기. 인식에 모든 것을 바쳤던 십대와 이십대. 타자(사회)와 첫 대면한 이래의 여러 가지 괴로움. 아픔. 상처에 뒤덮인 이십대 후반기......
지금 회상해 보면 한마디로 내가 '어렸었다'는 느낌 뿐이다. 꿈이 너무 컸었다. 요구가 너무 지나쳤었다. 나 자신에게 타인에게 우주 전체에게......
지금 나는 아주 작은 것으로 만족한다. 한 권의 책이 맘에 들때. 또 내 맘에 드는 음악이 들려올 때. 또 마당에 핀 늦장미의 복잡하고도 엷은 색깔과 향기에 매혹될 때. 또 비가 조금씩 오는 거리를 혼자서 걸었을 때. 나는 완전히 행복하다. 맛있는 음식. 진한 커피. 향기로운 포도주. 생각해보면 나를 기쁘게 해주는 것들이 너무 많다.
독일 민요에 '햇빛에 가득 찬 하루는 행복하기에 충분하다'라는 가사의 노래가 있다. 거창하거나 보편타당하고 인류의 귀감이 될 만한 '엄청난 무엇'은 이미 나와는 멀어졌다.
햇빛이 금빛으로 사치스럽게 그러나 숭고하게 쏟아지는 길을 걷는다는 일. 살고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괴로워하는 일 죽는 일도 다 인생에 의해서 자비롭게 특대를 받고 있는 우선권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스러운 무엇일 것 같다. 괴로워할 시간도 자살할 자유도 없는 사람은 햇빛과 한 송이 꽃에 충족한 환희를 맛보고 살아 나간다.
하루하루가 마치 보너스처럼 고맙게 느껴진다.
또 하루 무사히 살아 넘겼구나 하고 잠들기 전에 생각할 때 몹시 감사하고 싶은 - 우주에. 신에 - 마음에서 우러난다.  그리고 나는 행복을 느낀다.

 
 
잊혀지지 않는 영화 장면

40대에 들어선 여주인공은 이 청년과의 '만남'에서 자신의 '여자'를 발견한다.  


그 여자는 재판장을 하는 남편 밑에서 아무 불편도 없이 살고 있던 여인이었다. 남편의 부드러운 부성애적인 애정에 감싸여서, 마치 온실 속처럼 적당한 기온이 24시간 동안, 그리고 일생에 걸쳐서 보장되어 있던 귀부인이었다.
온실에서 자라 온실 속에 결혼해 들어가서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온화한 생활 상황에서 무사 평온히 일생이 끝날 것만 같던 여인, 이 여인이 스위스의 알프스 산록에 있는 스키장에서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이것이 비비안 리와 케네스 무어가 주연하는 <애정은 깊은 바다와 같이(The deep blue sea)>의 시초다. 그 청년은 모든 면에서 이 여인이 처음 보는 타입의 남자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그 여인의 남편이 갖고 있지 않은 모든 것을 갖고 있었고 또 남편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이 이 청년에게는 없었다.
그는 이 여인보다 훨씬 연하였다. 아름답지도 않았고 명문도 아니고 아무런 지성도 없고 교양도 교육도 부도 영혼도 세련된 생활 방식도 담화술도 아무것도 없었다. 이 청년에게 있는 것은 다만 생명력 ― 원시적인 생명력과 잡초보다 질긴 생활력과 뜨거운 포용력과 무엇보다도 '젊음'뿐이었다.
40대에 들어선 여주인공은 이 청년과의 만남에서 처음으로 성애에 눈을 뜨게 된다. 처음으로 남자에 대한 갈증을 알게 되고 충족받고 자신의 '여자'를 발견하게 된다. 이 경이의 세계에 몰두하기 위해서 이 여인은 집과 남편과 세상을 버리고 싸구려 하숙에서 그와의 동거 생활에 들어간다.
그러나 카타스트로프가 오는 것은 그 이후이다. 그 여자가 바라던 순수한 사랑만을 위한 생은 곧 그것이 '일루전(환상)'에 불과했음이 노정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신기한 보석을 주은 막벌이꾼의 호기심과 찬미로 그 여인을 갈망하고 숭배조차하던 그는 곧 그의 생기를 남김없이 쏟기에는 이 여인의 영혼이 너무도 복잡하고 취미가 자기와 동떨어진 곳에 있고 건강이 너무 섬세하고 무엇보다도 육체가 늙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재판장 부인이며 일급 레이디라는 신비한 베일이 떨어져 나가고 적나라하게 그와 마주 서고 그에게 심신을 바치고 있는 이 여인은 곧 그에게는 귀찮은 물건, 납덩어리같이 자기 양심에 걸리고 경쾌하게 젊음과 호탕을 거리에 쏟는 그의 습성에 대한 방해밖에는 안 되게 되고 만다.
그는 곧 미소를 거두고 찡그리는 얼굴과 불쾌한, 실례가 되는 언행밖에는 그 여인에게 안 하게 되며 이어서 집에서 될 수 있는대로 나가 있으려고 하게 된다.
그 여인은 그를 필사적으로 붙들려고 한다.
그 시도가 역효과임을 계산하지도 못할 만큼 사랑에 빠져 버린 것이다. 계단을 뛰어내려 가는 그를 그 여자는 미친 듯이 따라가며 "돌아와! 가지 말아!" 하고 큰 소리로 외친다. 하숙의 방마다 문이 열리고 하숙인들(수상스러운 남자들과 창부로 구성된)이 고개를 내밀고 구경한다. 그가 안 보이게 되고 난 후에도 그 여자는 그냥 난간에 매달려 있다. 허망하게 큰 눈을 뜨고. 이윽고 그 여자는 자기 정신으로 돌아오고 하숙인들이 구경하는 것을 보더니 그 이상 거만할 수 없는 표정으로 방안에 들어가 버린다.
그 장면 "돌아와! 가지 말아(Komm Zuruck! Gehnicht weg)!" 하고 소리 지르던 장면(이 영화는 독일서 보았다).
목소리에 하숙인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밑의 난간에 매달려서 허망하게 현관 문 쪽을 응시하던 모습은 잊혀지지 않는다. 너무나 그 여자에게 해당되지 않는 남자에의 집착. 이것은 '그 남자'에의 집착이 아니라 '남자'에의 또는 그 남자가 대표하고 있는 '젊음'에의 집착으로 보였다.
그리고 비비언 리의 외침소리는 공포, 고독에의 절규로 들렸고 언뜻 뭉크의 <외침>이 연상되어 내 뇌리에 새겨졌고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