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래간만에 옛 친구를 만나 세상 얘기를 하며 술을 마시고 있으려니, 그 친구가 느닷없이 지갑에서 젊은 여자의 사진을 꺼내 보여 주었다. '대체 누구일까?'하고 궁금해 했더니, 새 애인이라고 한다. 제법 귀염성 있게 생겼다. 덧붙여 그는 나와 나이는 같지만, 아직 독신의 몸이다.
'어때, 싱싱하지?'라고 그는 말한다.
'음, 그런데 젊은 걸'
'후후후, 열여덟이야, 열여덟'하고 그는 사뭇 유쾌하다는 듯 강조한다.
꽤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이 보여서 나로서도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암만 그래도 지갑속에다 자기 나이의 절반 정도 밖에 안되는 애인의 사진을 넣어 가지고 다니다니 굉장하다. 신나 보인다.
하긴 이런 사람은 정말 특수한 예외이고-이 세상에 이런 사람만 득실거린다면 내 머리가 이상해질 것이다-나 정도의 연령이 되면 대개는 지갑 속에다 어린애의 사진을 넣어 가지고 다니는 게 보통이다. 그러고는 오랜만에 만나면, 내게 보여 준다. 벌써 첫 아리가 국민학교 삼 학년이 된 친구도 있다.
'열 살이야, 열 살'하며 그 역시 즐거운 표정이다.
스타일이 상당히 다른 이 두가지 예를 딱 겹쳐 놓고 종합하여 보면, 나도 꽤 나이를 먹었구나싶은 실감이 난다. 독신자는 독신 나름으로, 처자를 거느린 자는 또 그 나름으로 나이를 먹어 아저씨가 되어 가는 것이다.
나처럼 회사에도 다니지 않고 어린애도 없는 처지에 있으면, 자신의 나이에 대한 정상적인 감각이 점점 사그러지고 만다. 어떤 부분은 거꾸로 어린애처럼 퇴보하고, 또 어떤 부분은 영감쟁이 같이 노쇄하여 버린다. 그래서 가끔씩이나마 옛 친구들을 만나면, 새삼스레 이런저런 것들이 실감나는 것이다.
그런 그렇고, 내 지갑 안에는 누구의 사진도 들어 있지 않다. 어린애도 없도, 젊은 여자의 사진을 행여 넣어 다니기라도 했다간 여러 가지로 어려운 문제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누라의 사진을 넣어 간직하는 것도 어째 좀 떨떠름한 기분이 든다. '이 사람, 우리 마누라, 서른XX살인데-'라는 소리는 도저히 못할 것 같다. 난처한 일이다. 뭐 그럴 것까지 없는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