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 무라카미 하루키, 안자이 미즈마루
옵서버: 오카 미도리
때와 장소: 1986년 4월 12일. 무라카미 댁에서
대담은 청주 '은령립산'을 기울이며, 넙치, 돌돔, 새끼 방어회를 안주로 하여 진행되었다. 조촐하지만 이노우에의 한펜과 진벽의 두부도 한몫 끼었다. 오카 미도리 씨는 쿠가야마에 사는 수수께끼의 독신 여성이다.
하루키: 음, 그러니까 오늘은 <무라카미 아사히도의 역습>의 삽화를 그려 주신 거장 안자이 미즈마루 씨를 모시고 삽화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우선 제일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삽화 중에 제가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거나, 제 방에 골프가방이니 어깨를 두드리는 기구니 하는 게 있는 그림이 있는데, 그건 완전히 심술이죠?
미즈마루: 아니, 어흠, 그건 악의가 있어 그런 게 아니고, 그저 그건 하루키 씨가 절대로 안 할 것 같은 시츄에이션을 그림으로 그려 보고 싶었거든요. 그런 절대로 할 턱이 없는 일을 슬쩍슬쩍 그림 속에다 그려 넣어 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요전번에 부인한테서 들었는데, 그런 일로 제법 팬들로 부터 문의 전화가 온다면서요?
하루키: 가끔 전화가 오는 모양이에요. '정말로 어깨 두드리는 기계 사용하는 겁니까?' 라는 등등 말이죠.
미즈마루: 놀랍군요. 그런일이 다 있다니.
하루키: 하지만 마지막 회 그림(마라톤의 세계 기록)은 친전하고 호의적인 그림이었습니다.
미즈마루: 그건 이제 마지막이니까 하고, 음.
하루키: 음.
미즈마루: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호의적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하루키: 음, 전체적으로는 물론. 그런데 말이에요, 미즈마루씨의 그림은 남자한테 보다는 여자쪽에 호의적인 거 아닙니까? 대체로 남자한테는 시니컬하단 말이에요. 여자한테는 약하고.
미도리: 후후후....
미즈마루: 그런가, 그럴 리가 있나요. 아, 그렇지, 바에서 여자를 지명하는 그림도 그렸죠. (술에 관하여1)
하루키: 아, 그 그림은 너무했습니다. '무라카미 씨의 이미지와 다르다'는 편자가 올 정도였으니, 그러고 보면.
미즈마루: 무라카미 씨는 그런 짓은 안 할 거라는 이미지가 있죠. 딱히 한다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닌데.
하루키: 음, 그야 물론 인간의 도리에 어긋난다거나, 윤리에 벗어난다든가 하는 건 아니죠. 그건 그렇고, 이번 책에는 우리 마누라도 그림에 두 번 등장하지요. 꽤나 친절하게 그린 모양이든데.
미즈마루: 곰곰 생각해 보니까 부인하고 그렇게 자주 만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음, 어떤 얼굴이었던가 하고 잊어 버릴 것 같을 무렵이면 우연히 만나게 되곤 하더군요. 그러면 '무라카미 씨의 부인은 이런 사람이었군'하는 생각이 나는 겁니다.
하루키: 얼마 전 오모테산도의 '에이코'에서 딱 맞추쳤드랬죠?
미즈마루: 음, 그때는 '아니, 무라카미 씨 부인하고 비슷한 사람이 있는데'하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바로 부인이어서... 그랬죠. 하지만 참 좋은 마누라야.
하루키: 미즈마루 씨는 정말 남의 집 마누라 칭찬을 잘 하십니다.
미도리: 후후후...
미즈마루: 하지만 귀엽잖아요. 오늘은 안 계셔서 좀 섭섭하지만.(급한 볼일이 생겨 외출을 했기 때문에 내가 손수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고 있다.)
미도리: 미즈마루 씨가 즐겨 그리는 여자와 경향이 비슷하죠, 머리가 길고 날씬하고.
미즈마루: 경향으로써는 말이요, 어흠.
하루키: 웨이브진 머리칼이라든가, 별로 없죠, 그러고 보면. 미즈마루: 안 그립니다, 어려우니까.
하루키: 단순히, 이유는 그것뿐입니까?
미도리: 하하하...
미즈마루: 그래요, 어려운 것은 안 그립니다. 그러니까 자전거 따위 안 그리잖아요, 난. 기계는 안 그린다구요, 어려우니까.
하루키: 하지만 말이죠, 옛날 <아르바이트 뉴스>에 롬멜 장군 그림 그린 적 있잖아요. 그 그림 어렵지 않았습니까?
미즈마루: 그런 건 좋아해요, 제법. 나치스는, 제복 같은 걸. 하루키: 나치스와 여자를 좋아한다...
미주마루: 거의 <사랑의 폭풍>이군.
미도리: 후후후... 쿡쿡쿡...
하루키: 저 말이죠, 그림은 그때 그때에 따라 이번에는 부담 없이 하자든가, 이번에는 좀 정교하게 그려 보자든가, 그런 게 있습니까?
미즈마루: 대개의 경우 아주 즐거운 기분으로 그립니다. 무라카미씨의 원고는 대충 삼 회분 정도가 한꺼번에 내게로 오잖습니까. 그러니까 나도 삼 회분 한꺼번에 그림을 그리죠. 소파에 드러누워 읽으면서 '아- 재밌어, 재밌어'하고 읽고는, '어흠, 이 부분을 그림으로 해 볼까'하고 원고의 복사본에다 줄을 찍 처 놓고, 단번에 그림을 그리는 거죠. 그렇지만 한꺼번에 건네주면 <주간 아사히> 사람, 잃어버릴 것 같아서 한 회분씩 건네주지만 말입니다. 후후후.
하루키: 저도 말이죠, 이런 원고를 쓰면 미즈마루 씨는 틀림없이 이런 그림을 그리겠지 하고 예상을 하면서 쓰는데, 그런 예상이 별로 안 맞았습니다.
미즈마루: 그렇죠... 나도 무라카미 씨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걸 대충 짐작하기도 하는데... 하지만 말이죠, 무라카미 씨의 원고는 아주 그림 그리기가 쉽습니다.
하루키: 아, 그래요.
미즈마루: 개중에는 웬지 그림 그리기 어려운 사람도 있어요. 무라카미 씨 경우에는, 음, 그러니까, 스스로 그림을 만들어 갈 수 있는데, 원고 중에는 원고대로 그림을 갖다 붙이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도 있잖아요? 문장을 읽어도 그림이 안 떠오르는 원고도 있고 말이죠.
미도리: 누굴까요? 녹음하지 않기로 하고 좀...
미즈마루: 아니 뭐, 그런 건, 후후후(하고 얼버무린다).
하루키: 그런데 미즈마루 씨 하고는 몇 번인가 콤비가 되어 일을 했는데, 주간지의 연재 (<주간 아사히>)는 상상 외로 반응이 크더군요. 가령 거 있잖아요, 동경에 와서 미즈마루 씨라든가 <소설 현대>의 미야다 씨에게 꼬심을 당했다는 얘기말이에요(바빌론 재출현).
미즈마루: 있었죠.
하루키: 미야다 씨가 나중에 투덜거리더군요. 그런 얘기를 쓰면 주변 사람들이 흰 눈으로 본다고요. 미즈마루 씨는 그 일로 부인한테 꾸지람을 들었다고 하던데...
미즈마루: 음, 마누라도 읽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마누라의 어머니도 읽고 읽거든요. 그런데 마누라는 제법 말이 많은 편이라서. '당신 그렇게 나쁜 짓 하고 다녀요?'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마누라의 어머니 쪽은 과연 신중하여 '저, 무라카미 씨가 가까이에 이사온 모양이지'라고 나한테 은근하게 얘기하는 겁니다.
하루키: 하하하...
미즈마루: 그게 더 무섭거든요, 어쩐지.
하루키: 영향을 받는 게로군요. 하지만 미즈마루 씨와 미야다씨가 함께 있으면 상당히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거처럼 보인단 말입니다. 풍경상.
미도리: 후후후후.
미즈마루: 그런데 말입니다, 무라카미 씨의 얼굴 딱히 그림하고 닮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데(안자이 미즈마루라는 사람은 이런 식으로 화제를 바꾸는데 매우 능숙한 사람입니다), 줄곧 그러다 보면 무라카미 씨의 얼굴은 바로 이것이라는 기분이 들거든요. 웬지, 그, 점점 내 자신도 그런 기분이 들어서. 그렇지만 분위기는 드러나죠?
미도리: 물론이죠. 뭐랄까, 그...
미즈마루: 그 그림의 얼굴이 죽 무라카미 씨라는 식이 돼 버리는 거죠.
하루키: 음, 겁나는군요.
미즈마루: 그거 팔까, 인형으로 만들어서.
하루키: 아라시야마 인형, 하루키 인형하고 시리즈로 말이죠.
미즈마루: 맞았어요, 맞았어요.
미도리: 하하하...
미즈마루: 무라카미 씨의 얼굴은 약간 언잖은 듯한 분위기로 그러면 훨씬 좋거든요. 틀이 딱 잡힌단 말씀이에요.
하루키: 입을 꽉 다물고 있는 듯한...
미즈마루: 그래요, 그래요. 입을 꽉 다물고 있는 얼굴.
미도리: 과연.
하루키: 하하하하하...
미즈마루 :필시 무슨 하찮은 일로 짜증을 내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그런, 뭐랄까 제멋대로 토라져 있는 듯한... 그런 식으로 약간 기분 나쁜 듯한 얼굴을, 눈썹을 약간 구부려서 그리면 굉장히 닮았단 말씀이에요.
미도리: 흐 - 음.
하루키: 그러나 미즈마루 씨가 그리는 초상화는 남자 쪽이 여자 쪽보다 리얼리티가 있어요.
미즈마루: 라기보다는, 뭐랄까, 남자는 조금만 비슷해도 본인이 '닮았군요'라고 말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여자는 정말 비슷하지 않으면 ' 난 여기가 달라요'라는 둥 따지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초상화를 보는 눈이 남자와는 다른거죠. 따라서 좀 안 닮았어도 좌우지간 예쁘게 그린다거나, 비교적 그런 일이 많습니다.
하루키: 친절하군요.
미즈마루: 그야 물론 친절하죠.
하루키: 뭔가 흑심이 있는 거 아닙니까?
미즈마루: 그런 건 흑심이라고 하는 법이 아니예요.
미도리: 후후후...
하루키: 그러니까 요약해서 말하자면, 리얼하게 그려서 불평을 듣는 것보다는 예쁘게 그려서 좋은 일이 있는 편이 좋다는...
미즈마루: 으 - 음. 여자란 말씀이죠. 닮지 않았어도 조금 예쁘게 그려 주면, '내 얼굴이 이렇게 예뻐요'라면서. 보는 방식이 달라요(대답이 안된다).
하루키: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 얼굴을 그렸더라?
미즈마루: 아라시야마라든가 가와모토 사부로(1944 -, 동경 태생, 영화, 문예 평론가)라든가...
하루키: 가와모토 씨의 얼굴 그림은 본 적이 없는데요.
미즈마루: 무라카미 씨 얼굴이랑 별다를 바 없어요. 무라카미 씨와 가와모토 씨의 차이점은 말이죠, 이렇게 뒷머리를 가와모토씨 경우는 좀 길게 그리죠. 그 사람 좀 머리가 길잖습니까. 그러고는 눈썹을 약간 처진 듯하게 그리는 겁니다.
하루키: 흐음, 흐음.
미즈마루: 눈은 똑같아요. 이, 흑점.
하루키: 그러고 보니 누군가에게 '가와모토 씨와 형제입니까?'란 질문을 받은 기억이 나는군요.
미도리: 하하하하...
미즈마루: 그렇군요, 함께 나란히 있으면 그렇게 여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키: 문예 평론가는 모두 형제가 되는건 아닌지. (웃음) 그리고 코미(다나카 코미마사(1925 -, 동경 태생. 소설가))씨도 그렸죠. 야마모토 마스히로(1948 -, 동경 태생. 요리, 연예 평론가) 씨도 그렸고.
미즈마루: 음, 마스히로의 경우도 기본적으로는 마찬가지예요. 수염을 덧 그릴 뿐. 나는 대체로 초상화에는 서툴고, 그다지 그리지도 않습니다. 단 저의 경우 삽화를 가지고, 문장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기분이 들게 하는, 말하자면 어리광이죠, 그렇게 봐 주십시오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심할 때는 화살표로 이름을 곁들이기도 하고.
미도리: 하하하... 하지만 어찌 된 셈인지 읽는 편도 결국은 용서하고 말죠. 미즈마루 씨에 대해서는.
미즈마루: 그러니까 아라시야마 같은 사람은 말하죠, '난 그런 얼굴이 아닌데 미즈마루 씨가 동그랗게 그려 버려서 그렇게 돼 버렸다'고 말입니다. 자연이 예술을 모방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이전에 야마후지 씨한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미즈마루 씨의 초상화는 시적 재능이 없는 인간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하루키: 칭찬을 들은 거로군요?
미즈마루: 음, 글세, 어떨까?
미도리: 하하하하...
미즈마루: 그건 그렇고, 야마구치 시모다마루가 요전에 하루주쿠에서 무라카미 씨의 부인을 우연히 만났다면서요?
하루키: 음, 그런 얘기했더랬습니다.
미즈마루: 그런데 야마구치 씨가 '저 말이죠, 무라카미 씨 부인 있잖습니까, 내가 저, 요코 씨 하고 말을 걸었더니, 몸을 뒤로 쭉 내빼는 거 아니겠어요'하고 한탄을 하더군요.
하루키: 마누라의 기분도 알만 해요. 깊은 이유도 없이.
미즈마루: '전 그렇게 나쁜 짓 안 하는데'라고 합디다. 했다가는 큰일이죠.
하루키: 한데, 시모다마루 군에게도 번듯하게 아이가 생겨 다행스럽습니다. 미인 마누라와 남자 아이와 에비스의 맨션에서... 행복한 인생이라 축하해 줘야겠어요. 축복해 주고 싶어.
미즈마루: 야마구치 코헤이라고 하지요.
하루키: 그 작자, 지금 정력제 광고 일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견본을 주더군요.
미즈마루: 아, 그거 나한테도 주었어요.
하루키: 미즈마루 씨한테는 줄이는 약을 주라고 했는데...
미도리: 하하하하...
미즈마루: 일단 먹어 보긴 했는데...
미도리: 벌써 먹었단 말이에요?
하루키: 그거 일흔 살이 될 때까지 그냥 보관해 두라고 그랬는데 말이에요. 뭐, 상관없겠죠. 음, 이제 슬슬 머위순 밥이 다 된 것 같으니까, 오늘은 이쯤하고.
미즈마루: 좀더 얘기하고 싶은데.
하루키: 다음에 또 얘기하죠.
미도리: 후후후...